작성일
2023.03.09
수정일
2023.03.09
작성자
예술대학
조회수
245

조선 초의 당악정재 수용과 변용

예술과 문화 The Journal of Arts and Culture
통권 제 3호│2023년 2월
ISSN: 2799-9084
(55p-75p)

조선 초의 당악정재 수용과 변용
곽림림


‘당악’ 은 넓은 의미로 한국에 수용된 중국음악 전반을 가리키며, 당악정재는 당연히 중국에서 ‘수용’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중국에서 수용된 당악정재는 조선 궁중으로 계승되며 변화하였으며, 이는 단순히 시간적 흐름에 따른 평면적 변화를 넘어 한국의 사정과 한국인의 미의식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한편, 조선 초에 새롭게 창작된 당악정재에는 고려 시대 당악정재의 모습이 남아 있으며, 당악정재가 향악정재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고려사』에 기록된 향악정재와의 비교를 통해 살펴볼 때, 고려시대 당악정재는 ‘노래를 주체로 한다’, ‘느린곡과 빠른곡이 엇갈린다’, ‘시작과 끝이 같다’의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악학궤범』의 당악정재 중 고려에서 계승한 <헌선도> <수연장> <오양선> <포구락> <연화대> 5편의 정재 역시 고려 시대 당악정재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으며, 더욱 규범화되고 세밀화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곡파>를 살펴 본 결과, 곡파는 ‘대곡’과 대립하여 존재하는 독립된 구조의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5편의 당악정재와 조선 초기 새롭게 창제된 9편의 당악정재를 비교한 결과, 새롭게 만들어진 당악정재는 고려시대 당악정재의 형식과 구성을 계승했으나 노래부르는 악곡의 수가 급감하면서 하나의 정재에 하나의 악곡을 노래하는 특징을 보이고, 느린곡과 빠른곡이 서로 교대하는 특징이 사라지고, 노래가 아닌 춤이 주체로 바뀌었다. 즉, ‘당악의 한국 음악화’라 일컬어지는 현상이 조선 중·후기부터 비로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조선 초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 주제어: 당악정재, 향악정재, 고려사, 악학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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